1971년 경주 모습
1971년 경주 모습
1963년 11월 수학여행한 후 8년 후의 모습
이 사진들은 국립공원 관광 경주 불국사
사진 첩입니다.
1971년 5월 30일 당시 구입시 가격 : 100원입니다
(명승 2호)
신라 23대 법흥왕 22년에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언으로짓기 시작함
200년 후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에 의하여 대 수축함
신라가 망하고 고려시대를 지나 이조 선조왕26년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이후에 건립
청운교-백운교
다보탑 (국보 제20호)
높이 약 9m
석가탑(국보 제21호)
높이 약 9m
일명 = 무영탑
석굴암(국보 제24호)
괘능(사적 제26호)
문무왕능 또는 원성왕능 구분이 어려움
경주시가 원경
지금은 엄청 변해져 있을 것임
첨성대(국보 제31호)
안압지 와 임해전터 신라문무왕 14년(서기674년)
삼국통일의 성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별궁
사적 제18호
석빙고(보물 제66호)
넓이 5.76미터, 길이=12.27미터,높이=5.21,시용된 돌은 1천장이 넘는다고 함
현재의 석빙고는 이조 영조 17년(서기 1741년)에 이축한 것이라고 함
오릉(五陵)을 일명 사릉(蛇陵)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 동비 알영부인,
남해왕(둘째임금), 유리왕(세째임금), 파사왕(다섯째임금)
포석정
사적 제1호
유유히 흐르는 물 위로 술잔을 띄워 보내는 여유로움과 멋진 운치로
태평성가를 부르던 천년의 수도 경주 신라의 혼이 숨쉬는 곳이 아닌가 ?
분황사탑국보 제30호
신라 27대 선덕왕 3년에 건축 원래는 9층이였는 대 현재는 3층만이
자연석을 다듬어 벽돌 처럼 축조
아래층의 길이가 약 7미터 입구 좌우에 금강역사의 상을 양각
탑의 사면에는 돌 사자가 4개가 있다.
탑을 수축할 때 탑속에 석함에는 옥류,금구,가위바늘통,방울,고적등 수십종
현재 모두 경주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함
석탈해 왕능
신라 4대 임금으로 알에서 태어 났다는 전설이 있음
탈해왕은 석(昔)씨의 조상이라 함
김유신 장군 묘
사적 제21호 김유신은 가락국 수로왕의 12세 손,
신라 26대 진평왕17년(595년)에 탄생, 무열왕 때 삼국통일
문무왕 13년(서기 674년)7월1일 돌아가니 나이 79세였다
무덤 옆의 비는 이조 숙종16년(서기 1678년)에 세운것이라함
왕능 못지 않은 규모를 눈여겨 볼 만 함
태종 무열왕능 및 비기
비석은 문무왕 원년(서기 661년)에 세워졌으나 현재는 이수와 귀부만이
사면 석불
보물 제121호
신라 35대 경덕왕이 백률사로 가던 중 산턱에 이르서서 땅속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서 소리가 나는 곳을
파 보니 커다란 바위 사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왕은 이곳에 절을 세우게 하였다는 사화가 있다고 함
높이가 4미터가 되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함
남산 마애 석가 여래 좌상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서 사진 속의 스님도 오래전에 입적하셨을 것 같음
사진첩 구입 당시가 1971년 5월 30일 이니 벌써 39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나무아미타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