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2 (신흥사 극락보전 변천)
신흥사(神興寺) 의 유래
향성사 - 선정사 - 신흥사
(1)
신흥사(神興寺)는 처음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절 이름을 향성사(香城寺)라 불렀다
향성사(香城寺) 명칭은 "衆香城佛國土"란 뜻을 따서 붙인 것이다
자장율사는 불교의 흥법(興法)을 위해
전국의 명산을 골고루 다니다가 이곳 외설악에 절을 세웠다
당시의 향성사 사지는 현 신흥사에서
동방 약 1,000 미터 지점에 향성사를 세웠다
그로부터 49년후인 효소왕(孝昭王) 10년(701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 뉴설악호텔 = 지금은 켄싱턴 호텔 임)
(2)
그때의 고승인 의상대사는 지금의 신흥사에서 북방 약 1,500m 지점에
현 내원암(內院庵) 자리에 선정사(禪定寺)를 중건하고
그 후 고려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 그간 942년 간
900여 선승(禪僧)들이 수도정진 중
인조 20년 ( 1642년 ) 선정사(禪定寺)는 다시 화마로 소실되었다
(3)
그 후 2년 후인 조선 인조 22년 ( 1644년 )에
고승인 영서(靈瑞),혜원(惠元),연옥(蓮玉) 세 스님이
일념으로 중건을 염원해 오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향성사(香城寺) 당시의 소림암(少林庵) 구지(舊址)로 부터
비범한 백발 신인(神人)이 출현하여 현 신흥사(神興寺)를 점지하며
" 이곳은 누만대삼재(累萬代三災)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하시고 홀연히 승공비거(昇空飛去)하거늘
돌연각성(突然覺醒)하니 심신을 황홀하게 하는 꿈을
세 스님이 똑 같이 꾸었음에
그 익일(翌日)부터
절을 창건하고 신몽으로 중건된 절이라 하여
절 이름을
신흥사( 神興寺)라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본 신흥사는 서기 1912년부터 본산 건봉사의 말사였으나
197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본사로 종무를 관장하는
본사로 승격되었다
(자료 : 속초시문화원 1984년 창간호 속초문화)
( 글 / 당시 신흥사 주지 - 김 해법 )
이러한 역사적인 신흥사가
요즈음은
그 이름의 한문 글자가 변했다는 것이다
신흥사( 神興寺 ) - 신흥사 ( 新 興寺 )
1950년대의 신흥사 극락보전
이 사진은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촬영하였던 것인데
얼마전에 속초시에 기증한 사진임
(자료출처 : 속초시 박물관)
저 극락보전에서
국민학교 6학년인 1958년 가을 수학여행때
1박하였던 곳이다
다음 날 기념촬영한 사진은 아래 사진임
< 사진 출처 - 속초국민학교 5회 나의졸업 앨범 >
어디쯤에서 찍었는 지 알수도 없네 그랴 ㅎㅎㅎ
앞 줄 오른편에서 우측으로 구부린 자세의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인 이규홍 은사님
극락보전에서 우리 동창들 모두
혼숙하였었지 ㅎㅎㅎㅎㅎㅎㅎ
극락본전 기둥에 당시에는 무슨 글자인지도 몰랐었지만
지금 보니
봉축 남북통일 기원이란 글이 보이네요
1964년에 고교 3년 설악산 가을소풍가서 박은 사진
극락보전 앞의 계단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다
극락보전 앞으로 오르는 계단이 위의 사진과 다름을 볼 수 있다
계단의 양 옆의 것은 예전과 같은 것이나
중앙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두폭을 더 설치했다
물론 기와도 많이 보수하였을 것이다
앞의 석등도 없었는데 증설했으며
단지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웠던 기둥 돌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다
보제루 아래에서 본 극락보전
2016년 3월 3일 촬영한 신흥사 극락보전
극락보전 오르는 계단의 오늘날 모습
예전 것이라면
계단 양 옆의 것이다
다음에
신흥사 ( 神興寺 ) - 신흥사 ( 新興寺 )
어떻게 달라 져 있는 지
사진으로 그 변천사를 알아 보겠습니다